[TV서울=박지유 제주본부장] 서귀포시 표선면 세화리에는 의외의 장소에서 맞이해 주는 책방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북살롱 이마고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또 단순한 책방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대중 인문서 시장을 연 출판사 이마고이자 '제주아카이브센터'라는 또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지요. 과연 제주의 무엇을 아카이빙 한다는 걸까요?
브릭스 매거진에서 북살롱 이마고/제주아카이브센터의 김채수 대표를 만나 북살롱 이마고가 어떤 서점인지, 제주아카이브센터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들어보았습니다. 인문·예술 책방을 넘어 제주의 삶을 기록하는 북살롱 이마고 / 제주아카이브센터로의 산책, 함께 떠나 보시죠.
북살롱 이마고/제주아카이브센터
Q. 북살롱 이마고는 어떤 곳인가요?
북살롱 이마고는 책방이지만 제주의 지역문화를 발굴하여 기록하고 전시하는 비영리단체 제주아카이브센터이기도 합니다.
처음 시작은 인문서와 예술서 위주로 큐레이션 하는 인문‧예술 책방이었는데, 제2공항 이슈로 인해 돌집을 비롯한 지역의 소중한 자산들이 급격히 사라져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너무 급해지더라고요. 어서 빨리 사진이든 글이든 이 지역의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지역 분들을 모아 기록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이후 몇 년간 다양한 지역 아카이브 프로젝트들을 진행했지요. 온전히 책만 판매하는 책방들과는 조금 차별화가 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원래는 서울에서 ‘이마고’라는 출판사를 운영하셨죠. 언제, 어떻게 이곳 표선면 세화리까지 오게 되셨나요?
제주로 내려오기 전, 계속 이명이 들리는 증상 때문에 치료를 받고 있었어요. 세 번의 약물치료 기회 중 첫 번째 치료에 실패하고 나서 마음이 무척 힘들었는데, 일이 정말 많고 바쁜 시기였지만 잠깐이라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딸과 함께 열흘 정도 제주로 여행을 왔어요. 그게 2014년 12월이었죠.
그런데 제주의 숙소에서 이틀 밤을 지내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이명이 안 느껴졌어요. 너무 놀라서 잠들어 있는 딸아이를 깨워서 제게 말을 해보라고 시켰어요. 제 이명은 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를 따라서 메아리처럼 음성 변조한 목소리 같은 게 다시 들려오는 증상이었는데, 그게 진짜 사라진 건지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정말 기적처럼 이명이 사라진 거예요.
북살롱 이마고 / 제주아카이브센터의 김채수 대표
당시 숙소였던 곳이 바로 이 근처였어요. 그때 책 때문에 가시리의 건축가 선생님을 만났었는데, 제 얘기를 들으시더니 제주에 내려와서 살아보는 건 어떠냐고 하시더라고요. 내려와서 땅을 사면 집을 지어주시겠다고요. 내심 서울로 돌아가면 이명이 되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그 얘기가 얼마나 반갑던지요.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제주로 이사를 가겠노라고 남편한테 선언하고 그날 밤 부동산 블로그를 검색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바로 이 땅을 발견했어요. 마침 찾기 힘들다는 작은 땅이라 다음날 바로 가계약금을 보냈어요. 그리고 3개월 후, 아이와 함께 이삿짐을 싣고 내려왔지요.
Q. 제주로 내려와 책방을 하실 생각이었나요?
처음부터 책방을 열 생각은 없었어요. 서울에서 20년 넘게 출판 일을 하면서 출판계에 염증을 느끼기도 했고 누적된 피로로 지쳐 있던 때여서 가능하면 책과는 좀 멀리 있고 싶었으니까요. 출판 편집자로 시작해서 출판사 이마고를 창업했고, 대중인문서 시장을 만들어간다는 일종의 사명감에 열심히 다양한 인문서를 만들었어요. 그에 값하는 좋은 반응도 얻었기에 당시 제주로 내려온다는 것은 모든 걸 일시에 접겠다는 결심을 뜻했지요.
당시 땅을 사긴 했지만 건축을 할 형편은 되지 않아서 근처에 연세로 집을 얻어 지냈는데 이듬해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예상보다 빨리 건물을 짓게 되었어요.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와중에 그럼 이 공간에서 무얼 할까 고민을 했지요. 사실 출판계 속설에 ‘팔자 도망은 해도 책 도망은 못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런저런 고민 끝에 결국 주위의 권유로 책방을 열게 되었어요.
그때는 건물을 지으면서도 제가 이렇게 계속해서 제주에 살게 될 줄은 몰랐어요. 건물이 지어지고 계획에 없던 책방을 열고, 그러면서 점점 제주의 삶에 매료된 것 같아요. 이주 초기에는 서울에 올라가면 이런저런 약속을 잡고 사람들도 만나고 그랬는데, 지금은 일 때문에 서울에 가도 공항에서 미팅만 하고 바로 내려올 정도로 제주의 삶에 더 익숙해졌지요.
Q. 책방 큐레이션은 어떻게 하시나요?
오랫동안 대중 인문서를 독자들에게 최대한 더 많이 알리려는 목적으로 출판을 해왔기 때문에 책방도 그런 작업의 연장선이라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아예 인문서 시장이 없어서 최대한 많은 인문서를 출판함으로써 대중 독자들에게 이를 알리고자 했다면, 지금은 너무나 다양한 책의 홍수 속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좋은 인문서들을 책방의 매대를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인문서의 비중이 제일 크고 그밖에 예술과 생태 관련 도서, 제주를 주제로 다룬 책들 등을 큐레이션하고 있어요. 사실 지역에 거주하시는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한 책도 입고해 달라고 많이 부탁을 하시지만, 제주에는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전문으로 하는 훌륭한 책방이 여럿 있기 때문에 대신 그런 곳을 추천해 드리고 있어요.
북살롱 이마고의 서가
Q. 제주아카이브센터는 어떻게 세우시게 됐나요?
제가 제주에 내려온 해에 제2공항 발표가 났어요. 갑자기 땅값이 올라가면서 기존 건물들이 허물어져 없어지고 나무들이 베어져 나가는 등 급격한 변화가 생겼지요. 마음이 급해졌어요. 내가 사랑하는 제주 본래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겠구나, 빨리 기록이라도 해놓아야겠다.
처음에는 혼자서 기록 작업을 했어요. 지역의 어르신들 인터뷰도 하고 사진도 찍었죠. 그런데 제가 기록하는 속도보다 변해가는 속도가 훨씬 빠른 거예요.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는데 마침 지역문화진흥원에서 책방 프로그램 공고가 난 것을 보고 지역을 기록하는 기획으로 도전을 했지요. 다행히 북살롱이마고가 선정이 되면서 예산이 확보되었고, 그걸로 〈제주, 마을의 기억과 풍경〉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어요.
〈제주, 마을의 기억과 풍경〉
〈제주, 마을의 기억과 풍경〉은 이곳 표선면 6개 마을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였어요. 14명의 참여자 대부분이 사진을 찍어본 적 없는 평범한 지역 분들이었지만, 6개월간 사진 공부도 하고 조를 짜 마을을 탐방하면서 어떤 것을 기록할지 서로 의논도 하고 핸드폰으로 사진도 찍어보고 그랬어요.
실제 책에 수록된 사진들은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찍었는데, 인화되어 온 사진 결과물을 보고 제일 놀란 건 바로 당사자들이었어요. 와, 이게 정말 우리가 찍은 사진인가 하고요. 필름 카메라가 주는 그 묘한 깊이와 색감과 마을의 풍경이 정말 멋지게 담겼지요.
이렇게 기록한 사진으로 제주에서는 물론 울산에서도 전시를 했고, 사진과 글을 엮어 책으로도 출간하자 정말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어요. 〈제주, 마을의 기억과 풍경〉 출간 이후 지자체나 공기관들과 연결이 많이 됐고, 지역 기록 프로젝트 의뢰가 많아지면서 제주아카이브센터를 설립하게 된 거지요.
〈제주, 마을의 기억과 풍경〉내지와 전시장 입구 | 제주아카이브센터 제공
Q. 제주아카이브센터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제주로 여행을 오시는 분들은 이 섬이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만 보고 돌아가죠. 실제 제주인의 삶은 그와는 동떨어져 있는데 말이에요. 우리 마을 어르신들만 해도 대부분은 아마 평생 관광지에 가실 일이 없으실걸요. 두 개의 제주가 존재하는 거죠.
저는 제주의 보통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관심이 많아요.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짜 제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삶의 터전으로서의 제주가 자꾸 변하고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주아카이브센터는 그런 진짜 제주의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기려 하고 있어요. 매년 지역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면서 해를 거듭하다 보니 점점 미시적으로 파고들어 가고 있고요.
4.3을 주제로 한 북촌리와 의귀리 마을 어르신들의 시그림 프로젝트
지금 보시는 『영혼을 돌아보지 마라』, 『나는 슬픈 아이여수다』는 4.3을 주제로 북촌리와 의귀리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한 시그림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에요. 북촌리와 의귀리는 4.3 피해가 굉장히 컸던 곳이거든요. 두 마을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시인들과 함께 4.3에 관한 기억을 시로 쓰고 그림으로 그렸어요. 굳이 시와 그림의 형식을 빌려와 기록을 한 이유는 이분들 입장에서는 말로 증언하는 일 그 자체도 정말 큰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세화리 어르신들의 자서전 '나의 이야기'와 표지 촬영 현장 | 제주아카이브센터 제공
『나의 이야기』는 저희 책방이 있는 이곳 세화리 마을 어르신들의 자서전이에요. 모두 열 분의 책, 열 권을 만들었는데 앞표지에는 어르신의 앞모습을, 뒤표지에는 뒷모습을 담았어요. 어르신 한 분 한 분 인터뷰해서 글로 풀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할 때만 해도 제가 제주어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던 때여서 인터뷰를 도와주신 분들과 함께 작업을 했어요. 다행히 지금은 제가 직접 인터뷰를 할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는 제주어에 익숙해졌지요.
제주아카이브센터에서 진행해 온 프로젝트들
누구라도 제주 기록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게끔 제주 기록자 양성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만들었던 『제주 기록』, 제주유네스코협회와 함께 제주 지역 고등학교 청소년들에게 에디터 교육을 하면서 만든 기후변화에 관한 매거진 『THINKERS』, 서귀포문화도시와 함께한 『서귀포 발효기행-할망의 부엌을 찾아서』, 『와흘리·토산리 삼촌들이 들려주는 음식 이야기 그림책』 등이 지난 몇 년간 제주아카이브센터에서 진행해 온 프로젝트예요.
영문 로컬 매거진 〈THE MOMENTS in Jeju〉| 제주아카이브센터
제주국제컨벤션센터(제주 ICC)에서 발간하는 영문 로컬 매거진 〈THE MOMENTS in Jeju〉는 전 세계의 마이스 산업 담당자들에게 제주를 알리는 홍보 매거진으로 콘텐츠 기획에서부터 제작까지 총괄을 맡아 진행하고 있어요. 벌써 6호까지 발간이 되었고, 올해 제주에서 열리는 APEC에 맞춰 세계 각국 정상들에게 제주를 알리기 위해 현재 7호도 부지런히 준비 중이랍니다.
Q. 의뢰한 기관도, 참여자들도 다르지만 프로젝트마다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프로젝트 제안이 들어오면 처음부터 제가 거의 100% 기획을 하고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진행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의뢰 기관이나 주체가 다르다 하더라도 계속 ‘제주의 생활 문화사’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담을 수 있었어요. 결과물의 모양은 조금씩 달라도 사실은 다 같은 주제의 콘텐츠를 담아온 거지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제주아카이브센터의 아카이브프로젝트 결과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가
Q. 대표님께서도 처음엔 외지인으로서 제주를 기록하며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물론 있었죠. 첫 번째는 언어였어요. 인터뷰를 하고 기록을 해야 하는데 제주어를 알아듣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제주에 10년째 살면서 조금씩 제주어를 알게 되었고, 지금은 반 이상은 알아듣는 정도까지 온 것 같아요. 그럼에도 90세 이상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은 지금도 30%도 못 알아들어요.
두 번째로는 지역에 계신 분들이 외부에서 온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제주의 특성상 저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해요. 제주는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침략을 받았던, 역사 자체가 침략의 역사잖아요. 그랬기 때문에 당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북살롱 이마고/제주아카이브센터
처음 기록을 시작했을 때 옆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를 매주 가서 뵙곤 했는데 처음에는 제대로 말씀도 잘 안 해주시고 눈길도 별로 안 주셨어요. 흔히 하는 말로 ‘육지 것’한테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이 썩 내키지 않으셨던 거죠. 그러다가 두어 달 정도 되었을 즈음인가 봐요. 제가 할머니의 비협조적인(?) 태도에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매주 찾아뵙고 기록하는 모습에 믿음이 가셨는지 어느 날 인터뷰가 끝났는데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밥상을 내오시는 거예요. 실제로 제가 워낙 시골 밥을 좋아하는 데다 마침 시장하기도 했던 터라 앉은 자리에서 밥 두 그릇을 먹고 반찬까지 싹 비우는 모습을 보시고는 할머니께서 엄청 흐뭇해하시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제가 가면 괜찮다고 사양해도 항상 밥을 차려주시고 냉장고에서 고사리 얼린 거, 감주 만들어 놓은 거 다 챙겨주셨어요. 그렇게 그분에 관한 기록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지요.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상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계속하면서 강연을 하거나 제주아카이브센터가 해왔던 일을 소개할 자리가 가끔 생기는데 요즘은 그런 자리에서 제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제주분들도 더러 계세요. 지금껏 아무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었던 것들을 이렇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로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하시면서요. 제주에 관한 기록을 계속하면서 이런 칭찬과 격려를 받을 때 가장 감사하고, 계속할 용기도 생기고 신이 나는 것 같아요.
Q. 지금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나요?
〈제주 메모리즈〉라는 상시 프로젝트가 있어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제주 기록 프로젝트인데, 원하시는 분께 기록 노트를 무료로 드려요. 각자의 제주를 이 노트에 기록하는 겁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제주가 있으니까 그걸 기록하는 방식도 구애 없이 다양해요. 예를 들어 이 노트는 13살 학생의 기록인데,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사진도 붙였어요.
〈제주 메모리즈〉 13세의 기록 | 제주아카이브센터 제공
누구나 이 프로젝트의 주체가 될 수 있어요. 제주에 사시는 분들, 제주에 여행 오신 분들, 누구나요. 노트마다 고유번호를 부여하기 때문에 혹시 노트를 다 채우지 못하시면 여기 그대로 두셨다가 다음에 다시 방문할 때 마저 채우셔도 돼요.
이 노트들을 모아 1년, 혹은 2년에 한 번씩 책으로 묶을 예정이고, 또 전시를 통해 참여해 주신 분들을 초대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해 보려고 해요. 이 노트가 이 책방의 책장 전체를 다 차지하는 날을 꿈꾸고 있고요.
Q. 최근 몇 개월간 북살롱이마고는 휴식기를 가졌습니다. 다시 문을 연 북살롱이마고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북살롱이마고는 책방이지만, 제주아카이브센터로서의 정체성을 좀 더 강화하고 싶었어요. 제 본업이 브랜드 디자이너이다 보니 제주의 브랜드와 직접 만날 일이. 많거든요. 그래서 제주의 정체성이 잘 담긴 제주 브랜드를 소개해 보자고 생각했지요. 지역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친환경적이고 지역민에게 의미가 있는 그런 브랜드들을 큐레이션 했어요. 제주의 청년 스타트업들이 만들어내는 제품들도요. 그런데 그런 제품들을 가져다 놓다 보니 문득 의문이 드는 거예요. 이게 진짜 제주 브랜드가 맞나?
어쩐지 진짜 제주 브랜드라고 하면 제주의 지역 오일장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제주 전역의 오일장을 돌아다니며 그 안에 숨어 있는 ‘진짜 제주 브랜드’들을 찾아내게 되었죠. 그렇게 만들어진 책방의 ‘오일장 에디션’ 매대에 첫 번째 주자로 소개된 브랜드가 바로 제주시민속오일장의 원일대장간, 유성쌀집, 대건상회 이렇게 세 브랜드예요. 이 ‘오일장 에디션’ 매대에는 지속적으로 제주 지역 오일장 브랜드들을 돌아가며 소개할 예정입니다. 이런 것들이 가장 제주다운 물건이고, 제주 보통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물건들이니까요.
제주도 오일장 에디션 매대 | 제주아카이브센터 제공
특히 원일대장간의 경우 책방에 농기구를 가져다 놓으니까 오시는 분들이 이 섹션을 가장 좋아하시는 거예요. 보시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거지요. 제주에서는 호미를 ‘골갱이’라고 하는데 지역별, 용도별로 호미의 모양과 크기가 다 다르다 보니 호미 하나에도 탐구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해요. 저는 이렇게 북살롱이마고 안에서 하는 일들이 계획하지 않아도 누군가와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이 되고 의도치 않았던 아웃풋이 나오는 게 좋아요. 그런 공간이 재미도 있잖아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지역 아카이빙을 좀 더 깊이 있게 해나가고 싶어요. 전시의 형태일 수도 있고, 출판이나 공연의 형태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단발적이고 휘발성 강한 프로그램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긴 호흡으로 진정성 있는 기록을 남기는 일이 우리의 임무라고 생각하니까요.
사실 그동안 제주를 기록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게 아니에요. 오히려 굉장히 많았습니다. 기관에서 학술적으로 제주를 계속 기록해 왔어요. 아쉬운 건 그런 기록이 일반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많이 기록되긴 했는데, 그냥 캐비넷 안에 들어가 있는 거지요.
저는 그런 기존의 기록을 꺼내 좀 더 쉽게 매력적으로 가공하고 디자인하여 최대한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끔 하고 싶어요. 아무리 우리끼리 제주 4.3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한 사람이라도 더 4.3이 어떤 사건이었는지 알게 하는 게 중요하지요. 이렇게 기존에 기록되어 온 콘텐츠와 저희가 새로이 발굴하는 기록들을 합쳐 이전 세대와 지금 세대, 그리고 다음 세대를 잇는 매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북살롱 이마고/제주아카이브센터의 김채수 대표
Q. 마지막으로 북살롱 이마고에서는 어떤 책을 추천해 주시겠어요?
사실 최근에 재일제주인센터의 지원으로 『오사카의 제주인 마을, 이카이노 이야기』라는 책을 이마고에서 출간했어요. 일제강점기 때 군대환이라는 배를 타고 오사카로 건너가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제주사람들 이야기인데, 1980년대에 일본에서 출간되었던 책을 이번에 번역해서 한국에 소개하게 된 거지요. 저자이신 고 김찬정 선생은 최근에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조선인 여공의 노래〉의 원저작자이기도 하고요. 1세대 재일제주인들이 대부분 돌아가신 상태라 이제는 더 이상 그분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없게 되었는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재일제주인의 이주 역사와 삶을 재조명하고 재인식하는 데 귀중한 의미를 남깁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재일한국인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거라 믿어요.
『오사카의 제주인 마을, 이카이노 이야기』
더불어 김성라 작가의 제주를 주제로 한 연작 그림책 『고사리 가방』, 『귤 사람』, 『여름의 루돌프』도 추천하고 싶어요. 김성라 작가는 제주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책 작가인데, 『고사리 가방』을 시작으로 제주 시리즈를 하나씩 내고 계세요. 현재는 서울에 살며 그림 작업을 하고 있는데, 상경 후에 제주를 굉장히 많이 떠올렸다고 해요. 그러면서 엄마와 함께 고사리 뜯던 기억, 해녀였던 할머니, 고향과 귤 등 제주에서 자기가 성장하면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이렇게 글과 그림으로 남긴 거지요. 이 또한 제주에 관한 기록 아니겠어요? 게다가 이 책들을 읽으면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지는지 몰라요.
김성라 작가의 제주 연작 그림책
인터뷰 · 사진 | 신태진
자료 협조 | 북살롱 이마고/제주아카이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