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서울=나재희 기자] 매년2월 마지막날은 ‘세계 희귀질환의 날’이다. 전세계에 있는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날로 모두가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을 함께하고, 환자 중에서도 약자인 희귀질환 환자와 보호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의 희귀질환 관련 법은 2015년 제정된 희귀질환관리법이 유일하다. 실질적인 지원은 환자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관리법이라는 이름에서 보여 지듯이 환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법령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오늘 ‘세계 희귀질환의 날’ 기념행사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개최하고, 희귀질환 복지법 제정을 위해 희귀질환 환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행사는 국회의원 강선우, 박주민, 김남희, 김윤, 서미화, 서영석, 전진숙 공동 주최, (사)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회장 김재학) 주관으로 진행됐다.
지난해부터 희귀질환복지법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희귀질환자들의 실질적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강선우 의원은 “국내에서 희귀질환으로 등록된 환자가 5만명이 넘는데, 낮은 발병률과 제한적인 치료법, 높은 의료비 부담으로 인해 대부분의 환자와 가족들이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하며 “희귀질환 환자들이 병원 치료 포함, 안정적인 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홈케어 지원제도’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재학 회장은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 아동,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법이 있으나 환자 중에서도 소수이고 치료제가 없거나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는 희귀질환자들의 복지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하고 “보호자가 평생 케어해야 하는 질환의 특성을 고려할 때 ‘환자 돌봄 시스템 구축’을 포함해 희귀질환자와 가족을 위한 희귀질환복지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첫번째 세션에선 한국갤럽 임성수 실장이 ‘이분척추증 환자의 삶의 질’ 연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분척추증은 태어날 때부터 척추 신경이 손상된 질환으로, 스스로 대소변을 조절하기 힘들기 때문에 소변과 대변을 적절하게 계속 비워주고 상태를 유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매일 사용하는 것 중 하나가 도뇨(소변을 빼주는)인데, 이번 조사는 청결 간헐적 도뇨를 하는 이분척추증 환우와 환우 가족96명을 대상으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뇨를 위한 카테터는1일 최대6개까지 급여가 되는데, 전체 응답자의59.4%가 ‘6개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들은1일 급여 적용에 적절한 카테터 수는8.7개라고 답했다. 이분척추증 환자 중45.8%가 ‘1일 기준 물 섭취량이 충분하지 않다’고 답변했는데, 물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는 이유로 ‘도뇨에 대한 부담 및 불편이45.5%, 요실금에 대한 우려가9.1%, ‘카테터가 모자라서’가6.8%로 나타났다.
두번째 세션은 희귀질환자 보호자들이 참석해 토크쇼 형태로 진행이 됐고, 질환별 환자들의 어려움과 필요한 정책을 직접 밝혔다.
“저희 가족은 선천성 수포성표피박리증과 함께22년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이 질환은 사소한 자극에도 수포가 발생합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피부의90% 이상이 수포와 상처, 상흔으로 덮여 있습니다. 매일 가정에서 시행하는3시간 이상의 상처 드레싱은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형벌과 같습니다.
남은20여시간도 다르지 않습니다. 환자는 상처가 발생하지 않도록 몸을 잔뜩 움츠리고, 보호자는 어디서 또 다른 상처를 겪지 않을까 마음을 졸입니다.
치료제도 없이 현 상황을 유지하기 위한 제반 비용만 월300만원이 들어갑니다. 지금이야 보호자가 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지만, 환자가 혼자 남은 시간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희귀질환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권영대(수포성표피박리증 환자 보호자)
“저희 아이는11살 된 여자아이인데요. 엔젤만증후군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낮은 지능과 언어장애, 균형감각 이상으로 인한 보행문제로 보호자가 한시도 눈을 떼기가 어렵습니다.
수면시간이 하루에 3~4시간 정도로 짧고 불규칙적이며, 뇌전증으로 인한 경련 발작이 발생하는 위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저희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가 더 이상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엔젤만증후군 환자가 자립할 수 있는 어떤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이영란(엔젤만증후군 환자 보호자)
“11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데요. 저희 아이는 대장 전체와 소장 일부가 없습니다. 단장증후군이라는 질환이예요. 하루에만10번 이상 묽은 변을 보기 때문에 엉덩이는 멀쩡한 날이 없고, 충분한 영양섭취가 어려워 발달장애도 갖고 있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것 외에 다른 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는데, 몇 년 전 지적장애 진단을 받고 장애인으로 등록되었어요. 아파해야 할 일인데, 오히려 제게는 둘째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활동지원사님의 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우리나라 희귀질환 환자들의 현주소입니다. 희귀질환자들은 현재 장애등록 기준과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아 꼭 필요한 돌봄(활동보조, 특수학교 등) 및 각종 케어비용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같은 질환/증상이더라도, 선천성이냐 후천성이냐에 따라서도 산정특례 대상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에 지원을 받지 못해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가정도 있습니다.”
이다래(단장증후군 환자 보호자)
“하지 마비로 휠체어를 이용하고 대소변 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분척추증 환아 가족입니다. 지금은 대학이라는 새로운 삶에 도전하면서 도뇨와 변비, 몸의 변화를 조절하면서 평범한 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분척추증 환자들은 신경관의 손상 위치와 범위에 따라서 증상이 모두 다릅니다. 카테터가 하루에5-6개 필요한 환우부터8개 이상 필요한 환우까지 다양한데, 환자의 요구에 맞지 않게 도뇨 관 급여 지원의 한계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양은경(이분척추증 환자 보호자)
한국수포성표피박리증환우회 권영대 대외협력팀장은 “희귀질환은 언제, 누구에게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건강 약자이자 소수자인 희귀질환자의 삶이 안전한 사회라면 분명 모두에게 안전한 사회로 한발짝 가까워진 것이라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희귀질환복지법 제정은 한국사회가 배제한 희귀질환자들의 정당한 시민권을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전했다.
한편, 이번 기념행사에서 ‘희귀질환 홍보대사’로 구경선 작가가 위촉됐다. 구경선씨는 토끼 캐릭터‘베니’를 그린 작가로, 어셔신드롬을 앓고 있는 희귀질환환자이기도하다.
구작가는 지난해 어셔신드롬을 비롯해 5개 희귀질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인스타툰을 제작, 희귀질환환자들의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따뜻하게 잘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