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서울=신민수 기자] "'어머님 전상서'(前上書)라는 1930년대 한국 가요를 듣는데 어느 순간 블루스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한국 가요와 미국의 블루스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 음악이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겠다 싶었죠."
재즈 피아니스트 겸 보컬리스트 마리아 킴이 이달 발매한 정규 8집 '러브 레터스'(Love Letters)에는 다른 곡과 유독 구별되는 노래 하나가 수록돼 있다.
1939년 김영파가 작곡하고 이화자가 부른 '어머님 전상서'를 재해석한 '레터 투 마더'(Letter to Mother)다. 통상 영어로 곡을 녹음해온 마리아 킴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딸의 마음을 표현한 이 곡을 수록곡 10곡 가운데 유일한 한국어 가사로 불렀다.
미국 재즈 전문 레이블 '라 리저브'와 음반 계약을 맺고 세계의 리스너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그가 이런 시도를 한 이유는 음악으로 모두가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마리아 킴은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담겼다고 생각해 데뷔 후 처음으로 한국어 가사 곡을 수록하게 됐다"며 "상대가 어느 나라 사람이든 저는 당신과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마리아 킴은 한 실내악 악단의 편곡 의뢰를 받고 '어머님 전상서'를 처음 접했을 당시 곡을 이해하지 못해 작업에 난항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이후 곡을 반복해 듣는 과정에서 발견한 블루스 선율이 실마리가 되어주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작곡가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곡의 선율도, 형식도 블루스였다"며 "그때부터 한국 근대가요를 부른다는 생각보다는 재즈 뮤지션으로서 블루스를 부른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주변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는다는 앨범의 기획 의도와도 어울리는 곡이었다. 마리아 킴은 10년 가까이 어머니와 떨어져 미국에서 생활하던 시절 어머니와 애틋하게 통화했던 기억을 떠올렸다고 했다.
마리아 킴은 "1분에 천 원 하는 전화카드를 사서 전화하고 그리워하던 때가 있었다"며 "곡을 들은 어머니가 한국어 가사를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한국어 곡을 녹음해 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앨범에는 이 곡 외에도 마리아 킴의 진솔한 생각이 느껴지는 곡들이 여럿 실렸다.
'네버 세이 예스'(Never Say Yes)에선 언제나 꿈꾸기를 포기하지 말라는 응원을 건네고, '돈트 비 온 더 아웃사이드'(Don't Be on the Outside)는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1945년 발표된 빅터 영의 히트곡을 재해석한 타이틀곡 '러브 레터스'도 그에게 의미가 큰 곡이다. 마리아 킴은 활동 초창기 자신의 섬세한 목소리가 재즈 보컬로 활동하기에 적합한지 확신이 없던 시기에 이 노래를 듣고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마리아 킴은 "당시 파워풀한 여성 보컬이 인기를 누리던 때였는데, 이 노래로 섬세한 표현이 더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이 곡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때 녹음해보자고 생각하다 앨범에 담게 됐다"고 말했다.
마리아 킴은 청소년 시절부터 국내 유명 재즈 클럽 '야누스'에서 공연 경험을 쌓으며 성장한 재즈 뮤지션이다. 재즈 뮤지션으로는 드물게 피아노와 보컬을 병행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이후 버클리 음대에서 학사,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2015년 첫 앨범을 발매했다. 2021년 발매한 앨범이 이듬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 보컬 음반 부문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10년 전 첫 앨범을 낸 뒤 많은 인연을 만난 덕에 뮤지션으로 성장했다는 그는 이번 앨범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주변 지인, 팬들, 동료 아티스트를 통해 배운 것들이 성장하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그분들을 향한 애정을 담은 메시지를 전해드리고 싶었죠."
마리아 킴은 지난해 '라 리저브'와 음반 계약을 맺고 첫 월드투어를 개최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올해도 최근 중국에서 공연을 마쳤고 일본, 대만, 독일을 순회하는 새로운 월드투어를 앞두고 있다.
재즈가 낯선 대중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하는 등 새로운 관객을 발굴하는 노력도 이어간다. 마리아 킴은 다양한 무대에서 새 인연을 만나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며 재즈 뮤지션으로 살아가는 기쁨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저 잘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요즘에는 누구를 만나든 진솔하게 소통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도 새로운 만남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즐겁게 해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