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서울=이현숙 기자]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에 64억 달러(8조9천억원)의 반도체 보조금을 제공한다고 15일(현지시간) 발표한 데는 결국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및 '인베스트 인 아메리카'(대미 투자 촉진 정책)와 '미중전략경쟁'이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제조업 기반 재건과, 미중 전략경쟁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반도체 공급망의 국내화라는 경제 및 안보상 목표 하에 삼성전자의 대규모 대미 설비투자의 유인책 내지 보상 성격으로 거액의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2017∼2021년)때부터 '아메리카 퍼스트' 기치 하에 해외의 자국 공장을 미국으로 돌아오게 하는데 박차를 가하는 한편, 자국내 제조업의 재중흥을 도모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전략경쟁 심화와 중국의 '기술 굴기'는 미국에게 첨단 기술의 핵심인 반도체 관련 해외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안보상의 리스크로 자각하게 만들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이후 '인베스트 인 아메리카'를 내세워 첨단산업에 대한 대미 투자를 유도해왔고, 특히 세계 굴지 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설비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반도체법(2022년 발효)을 야심차게 입법했다.
미국에 공장을 짓는 기업에 반도체 생산 보조금으로 총 390억달러, 연구개발(R&D) 지원금으로 총 132억달러 등 5년간 총 527억달러(약 73조원)를 지원하도록 한 것이 반도체법의 골자다.
삼성전자에 대한 지원은 자국 기업인 인텔과 대만 기업인 TSMC에 대한 지원에 이어 반도체법에 따른 대규모 보조금 지원의 '제3탄'으로 발표됐다.
지난달 미국 상무부는 자국 반도체 업체 인텔에 최대 85억 달러(약 12조원)의 보조금을 제공하고 110억 달러(약 15조원) 규모의 대출 지원을 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어 지난 8일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에 보조금 66억 달러(약 9조1천억원)와 50억 달러(약 6조9천억원) 규모의 저리 대출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기존에 책정한 투자 규모인 170억 달러(23조5천억원)의 배가 넘는 총액 약 450억 달러(약 62조3천억원) 규모로 투자를 확충하기로 하고, 그에 따라 총 투자액의 약 14.2%를 보조금으로 받게 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1월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대대적 설비투자를 고용 창출 기대 효과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홍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이번 삼성전자에 대한 미국의 거액 보조금과 삼성의 대규모 대미 설비투자는 미중전략경쟁 심화 속에 윤석열 정부 하에서 추진되고 있는 한미 안보 및 경제 공조 강화 흐름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어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전면적인 '디커플링'(decoupling·공급망 등 분리)은 하지 않는다면서도 전략 산업 영역에서 중국이 미국의 기술을 활용해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기술력을 갖추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이른바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을 공식 정책으로 추구하고 있다.
첨단 반도체는 이 대중국 디리스킹의 핵심요소이다.
치열한 미중 전략경쟁 속에 삼성과 TSMC 같은 미국의 반도체 공급원들이 중국의 영향권 안에 자리한 상황에서 이들을 미국 본토 안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 반도체법이라는 유인책을 마련한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법을 통해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미국이 2030년까지 전 세계 최첨단 반도체의 20%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같은 미중전략경쟁 심화 속에서 윤석열 정부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의미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 과거 기조와 사실상 결별했다.
중국과 껄끄러운 관계를 감수해가면서 미국의 대중국 견제 구도에 이전 정부에 비해 한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기조가 이번 미국의 지원과 삼성의 대규모 투자에 배경의 일부로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다만 미중경쟁과 결부된 거액의 보조금은 중국에도 대규모 반도체 생산라인을 보유한 삼성을 포함한 한국 반도체 기업에게는 중국 사업과 관련한 '압박요인'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미 반도체법은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기업에 대해서는 중국 내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장하는 데 제한을 요구하는 이른바 '가드레일'을 두고 있다.
미국 정부의 가드레일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중국 내 생산 라인을 보유했을 경우 첨단 반도체의 경우 5% 이상, 28나노 이전 세대의 범용 반도체는 10% 이상의 생산 능력 확장을 할 경우 받은 보조금을 반환해야 한다.
또 만약 미국 투자기업이 이를 어겼을 경우엔 지급된 보조금을 환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