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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친부 살해' 무기수 김신혜 재심 종결…검찰, 무기징역 구형

검찰, 유죄 주장에 변호인 모두 부인…12월 18일 재심 선고

  • 등록 2024.10.22 09:00:05

 

[TV서울=이천용 기자] 친부 살해 혐의로 24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 김신혜(47) 씨의 재심 절차가 개시된 지 5년여만에 마무리돼 오는 12월 18일 선고가 내려진다.

하지만 검찰이 재심 재판에서도 유죄를 확신하며 무기징역을 구형했고, 김씨 측 변호인은 검찰 측 증거를 반박하며 무죄 주장으로 맞서 재판 결과가 주목된다.

21일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1부(박현수 지원장) 심리로 열린 김씨에 대한 존속살해 혐의 재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김씨는 2000년 3월 전남 완도에서 아버지에게 수면유도제가 든 술을 마시게 해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돼 2001년 3월 무기징역 형이 확정됐다.

 

이후 "(김씨의) 여동생이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의 말에 거짓으로 자백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경찰의 부적법한 수사도 인정되면서 2015년 11월 재심이 결정됐다.

그러나 김씨 측이 변호인 교체·국선변호인 선임 취소 등을 반복하면서 재심 재판은 공전했고, 2019년 3월 첫 재심 재판이 열린 이후 5년 7개월 만에 결심공판이 열렸다.

이날 공판에서 구형에 나선 검찰은 자신과 자기 여동생을 성적으로 학대한 아버지에게 앙심을 품어 이러한 일을 저지른 것이라며 유죄 주장을 펼쳤다.

검찰은 "'아버지가 성적 학대'를 했다는 이야기를 여동생 등 가족으로부터 김씨는 들었다"며 "이 사실에 격분한 김씨에게 아버지를 살해할 분명한 동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버지 명의로 보험 7개에 가입했고, 수령 가능한 보험금은 당시 3억5천만원, 교통사고 사망 시 9억원 상당이었다"며 "술에 수면유도제를 탔다는 범인만 알 수 있는 범행 방법을 김 씨는 아버지의 부검 전 알고 있었는데, 이를 종합하면 살해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프레젠테이션(PPT)으로 검찰 주장을 반박한 김씨의 변호인 박준영 변호사는 수면제·성적 학대 등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모두 부인했다.

박 변호사는 "수면제 가루를 양주에 탔다고 검찰이 주장했으나 부검 결과 다량으로 약물을 복용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이는 살해했다는 직접 증거가 될 수 없고, 간접 증거일 뿐이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로부터 자신과 동생이 성추행당했다고 한 주장은 선처를 구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며 "당시 가족의 잘못된 조언으로 아버지를 성폭행범으로 만들었는데, 자신의 명예도 중요하나 아버지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버지 명의 보험에 가입한 것은 사실이나 사건 발생 두 달 전인 2000년 1월 대부분 가입했다"며 "보험 설계사로 일한 김씨가 이런 경우 보험금 지급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김씨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은 오는 12월 18일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다.

김씨는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했다는 사유를 교도관에게 전달하며, 이날 공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뒤 박 변호사는 취재진과 만나 "재심을 청구한 지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며 "그동안 수집된 증거·자료들을 감안해 재판부가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이 현재 재판을 계속 불참하고 있는데 마지막 선고 때는 출석할 수 있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기고] 8월 15일, 기억과 미래를 잇다

광복절(光復節)은 ‘영예롭게 회복한 날’이라는 뜻을 지닌 기념일이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이후, 우리 민족은 주권이 없는 암울한 시대를 견뎌야 했다. 이름을 일제식으로 바꿔야 했고, 우리의 문화와 언어는 억압받았으며, 수많은 젊은이의 병력과 노동력을 강제 동원당했다. 그럼에도 우리 선조들은 자유와 독립을 향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1919년 3·1운동으로 우리 민족의 함성 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고,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조직적인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광복군을 창설해 해외에서 독립전쟁을 준비하는 등, 뿌리 깊은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정신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우리 민족은 오랜 식민 지배로부터 영예로운 광복을 이뤄냈다. 이는 독립운동가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물이자, 역사상 가장 처절했던 식민 통치에 맞선 숭고한 투쟁의 결실이었다. 이처럼 광복절은 과거의 승리를 되새기는 날인 동시에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소중한 이정표다. 이날을 단지 하나의 기념일로만 보는 시선을 넘어, 어떤 희생이 있었고 또 무엇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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