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서울=이현숙 기자] 폴란드가 18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이번 선거 결과는 2023년 출범한 도날트 투스크 총리의 연립정부가 친유럽 정책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 미국과 더 가까운 민족주의 우파 진영의 저항에 계속 가로막힐지 판가름할 전망이다.
폴란드는 대통령이 군통수권과 법안 거부권, 의회 해산권, 사면권 등을 갖고 총리가 이끄는 정부를 견제한다.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이같은 권한을 무기로 투스크 총리의 각종 개혁 작업에 발목을 잡아 왔다.
후보 13명 가운데 연립정부 주도세력인 중도 자유주의 성향 시민플랫폼(PO)의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53)와 민족주의 우파 법과정의당(PiS)의 지지를 받는 무소속 카롤 나브로츠키(42)가 선두를 다투고 있다.
투표 이틀 전인 16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트샤스코프스키 후보가 지지율 31.1%, 나브로츠키 후보가 25.3%를 기록했다. 현지 언론은 1차 투표에서 둘 다 과반 득표에 실패해 두 후보가 내달 1일 결선투표를 치를 것으로 내다봤다.
2018년부터 바르샤바 시장으로 재직 중인 트샤스코프스키 후보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유학한 뒤 유럽연합(EU) 의사결정 구조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유럽의회 의원도 지냈다. 이 때문에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지낸 투스크 총리의 유럽 지향 정책을 적극 뒷받침할 인물로 꼽힌다.
5개 언어를 구사한다는 트샤스코프스키 후보는 EU에서 폴란드의 역할 확대와 성소수자 인권보호, 사법부 독립 등을 내걸었다. 그는 유세에서 친러시아 정책을 펴는 슬로바키아와 헝가리 정부를 언급하며 이번 선거를 서방 자유주의와 동유럽식 민족주의 사이의 선택으로 규정했다.
나브로츠키 후보는 국립추모연구소(IPN) 소장을 지낸 보수 성향 역사학자다. 그는 폴란드 안보가 미국에 달려 있다며 미국과 협력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안보 불안을 잠재우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미국에 찾아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양국 관계의 미래를 논의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당선을 기원했다고도 밝혔다.
그는 유럽 난민협정 탈퇴를 주장하고 성소수자 포용정책에 반대하는 등 전형적 우파 포퓰리즘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폴란드인 학살 등 과거사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외신들은 결선투표가 치러질 경우 10%대 지지율로 여론조사 3위를 달리는 자유독립연맹(KWiN)의 스와보미르 멘트젠(38) 후보가 킹메이커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했다.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멘트젠 후보는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폴란드가 과도한 재정 부담을 져서는 안 되며 폴란드 헌법이 EU 법률에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브로츠키 후보와 멘트젠 후보는 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미 관계에서 사실상 포퓰리즘 동맹을 형성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두 후보 모두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과 반이민 정책, 워크(woke·진보적 가치와 정체성 강요에 대한 비판적 표현)와 싸움을 내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라고 전했다. 나브로츠키 후보는 폴란드 대선 1차 투표와 같은 날 대선 결선을 치르는 루마니아의 민족주의 성향 제오르제 시미온 후보와 합동으로 유세하며 '친트럼프 연대'를 과시했다.
PO를 중심으로 6개 정당이 모인 시민연합(KO)은 2023년 총선에서 PiS를 누르고 8년 만의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투스크 총리는 PiS 정권 시절 파탄난 EU와 관계 회복을 내걸고 법치주의 훼손을 이유로 끊긴 EU 기금도 복원했다. 그러나 낙태권 부활과 사법·언론 개혁 과제는 PiS측 인사인 두다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과 사면권 행사에 번번이 발목을 잡히고 있다.
싱크탱크 유럽외교협의회(ECFR)의 피오트르 부라스는 트샤스코프스키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투스크 총리의 정치적 과제도 완수하기 어렵다며 "폴란드는 유럽의 희망에서 유럽의 짐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