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서울=신민수 기자] 누구든 살면서 한 번쯤 '질투'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친구, 가족 등 주변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내 결핍을 부끄러워 해본 경험도 누구나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은 그 감정에 집중한다.
두 인물이 10대부터 40대까지 긴 시간 동안 서로를 선망하고, 때론 원망하면서도 결국 서로를 보듬어 안게 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어렸을 적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반지하방에서 엄마의 우유 배달을 도우며 살아온 은중(김고은 분)에게 상연(박지현)은 완벽 그 자체였다.
화장실이 2개인 새 아파트, 엄마 아빠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명석한 두뇌 등 부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상연은 오히려 싹싹하고 사교적인 성격의 은중을 부러워한다.
특히 자신에겐 유독 엄격하던 엄마와 과묵했던 친오빠까지 구김 없는 은중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을 보며, 가족들이 자신보다 은중을 더 사랑한다는 착각에까지 빠져든다.
"아이가 한 번 그렇게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그렇게 돼 버리는 거야."
극 중 상연의 대사처럼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는 상연의 오해는 그의 삶을 점점 뒤틀리게 한다.
여기에 친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 부모님의 이혼과 경제적 몰락 등 연이은 악재는 상연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몬다.
은중과 상연의 질긴 인연은 20대, 30대에도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은중과 마주하면 할수록 상연은 자신의 결핍과 직면하게 된다.
특히 어둠 속에 있던 자신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 준 은인이자, 자신이 먼저 좋아했던 첫사랑이 이미 은중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상연은 무너지고 만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은중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달은 상연은 은중의 연인을 흔들고, 은중이 애써 기획한 영화를 빼앗으며 은중에게 생채기를 낸다.
"네가 멀쩡한 게 싫어. 망가졌으면 좋겠어 나처럼."(상연)
"누가 끝내 널 받아주겠니."(은중)
결국 은중과 상연은 가시 돋친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끊어낸다.
이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마주했던 꼬여버린 관계, 그리고 그 관계로 인한 극심한 피로감을 떠올리게 하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들은 40대에 또다시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말기 암으로 죽음을 앞둔 상연이 은중을 갑자기 찾아오면서다.
상연은 "내가 나일 때 죽고 싶다"며 '조력 사망'을 결정하고, 그 마지막 여행길에 동행해줄 것을 은중에게 요청한다.
자신에게서 빼앗은 영화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결국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은 상연을 보며 은중은 고민에 빠진다.
"싫어하는 건 생각이 안 나서 좋은 거고, 미워하는 건 생각나서 힘든 거야."
결국 은중은 그토록 미워했지만 자신의 삶에서 지울 수 없었던, 상연과 함께 스위스로 떠나기로 결정한다.
은중과 상연의 마지막 스위스 여행은 풀어진 그들의 관계처럼, 유난히도 따스하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이 작품은 '조력 사망'이라는, 조금은 어려운 의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다만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사회적, 윤리적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각 인물이 이를 결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집중한다.
외롭게 세상을 등진 오빠와 고통에 몸부림치다 삶을 마감한 엄마를 떠올리며 "나보다 더 행복하게 죽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상연, 그런 상연이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고, 덜 외롭길 바라며 곁을 묵묵히 지키는 은중에게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액션이나 치정 등 자극적인 요소 하나 없이 두 여성의 길고 긴 서사가 이어지는데도 극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김고은과 박지현의 섬세한 감정연기가 그 빈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상연을 연기한 박지현은 "(시청자들이) 은중도 이해하고 상연도 이해해야 마지막 결말까지 함께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은중도, 상연도 모두 이해하게 하는 것, 극을 이끌어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숙제를 두 배우는 모두 성공적으로 해 냈다.
15회차에 걸친 긴 호흡에도 두 인물의 서사에 구멍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송혜진 작가의 짜임새 있는 극본과 조영민 감독의 흡입력 있는 연출도 한몫한다.
실제 첫 공개 당시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47위 수준이었던 이 작품은 조용히 입소문을 타면서 국내 드라마 시리즈 1위, 글로벌 비영어권 시리즈 5위로 역주행에 성공했다.
"누구든 '은중'이었을 때가 있었고, '상연'일 때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김고은의 이 한마디처럼 '은중과 상연'은 우리 모두에게 은중이었던 날과, 상연이었던 날을 떠올리게 한다.